번역가 권남희 산문『귀찮지만 행복해볼까』


반듯한 문장 대신 다정한 유머를 사랑하는 요즘

반듯함이라는 클리셰, 문학의 상투성

나의 전작주의 작가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웃픈이야기’도 비틀어 볼 줄 아는 유머러스함이다. 한때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산문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반듯한 사고와 사유의 걸음걸이가 정답처럼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반듯함은 익숙한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반복되는 고결함 속에서 클리셰의 그림자를 발견한 탓이었다. 그래서 조정래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문학은 상투성과의 싸움이다”.

이후 자연스럽게 전작주의 작가가 바뀌었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작가, 최민석작가, 김신회작가, 신예희작가가 대표적이다. 요즘은 한 명 더 추가되었다. 다수의 하루키 소설을 번역한 권남희 번역 작가인데, 이제는 에세이 작가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은퇴하면 언젠간 IT기술서적 일본어 번역일을 하려고 했었다. 이렇게 과거형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지금은 포기했다는 의미인데, 그때 번역 관련 책을 찾다가 만난 책이 권남희 작가의 “번역에 살고 죽고” 라는 에세이였다.

물론 이 에세이를 읽고 번역을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의 사소한 고민과 갈등을 유머러스하게 펼쳐내는 그녀의 내러티브 글솜씨에 반했다. 이후 『혼자여서 좋은 직업』, 『어느 날 마음속에 나무를 심었다』, 『스타벅스 일기』를 차례로 탐독하며, 시나브로 그녀의 지독한 전작주의자가 되었다.

절판된 행복을 찾아 헤맨 숨바꼭질

하지만 그녀의 산문집 중에 베스트셀러인 『귀찮지만 행복해볼까』를 읽지 못했다. 현재는 절판된 산문집이기 때문이었는데, 디지털 세계의 eBook 목록이나 밀리의 서재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왜 인기 있던 산문집이 절판되었을까,라는 호기심과 갈증을 안고 오래된 책 냄새가 나는 헌책방을 기웃거렸다. 집 앞 알라딘 서점은 늘 헛걸음이었는데, 우연히 쿠팡 도서에서 ‘재고 1권’이라는 글귀를 보았을 땐 빛의 속도로 주문을 마쳤다.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작은 설렘을 안고 기다렸다. 하지만 이튿날 찾아온 것은 재고 부족으로 인한 주문 취소 알림 문자였다. 야속한 아쉬움도 잠시,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 속에서 그 간절함은 서서히 잊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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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권남희 산문『귀찮지만 행복해볼까』 1

건망증이 숨겨둔 뜻밖의 위로와 완독의 밤

어젯밤의 일이다. 그동안 구입해 두고 읽지 못한 eBook 서가를 무심히 뒤적거리다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 있었다. 화면 위로 선명하게 떠오른 제목,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나도 모르게 고요한 방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아마도 절판 전, 『번역에 살고 죽고』를 장바구니에 담던 날, 함께 결제를 해두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책을 검색할 때면 프롤로그의 첫인상에 이끌려 일단 주문부터 하고 보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가에는 아직 첫 페이지도 들추지 못한 책들이 많고, 이미 주문한 책을 또다시 사는 중복의 우를 범하기도 한다. 자랑하고 싶지 않은 나의 건망증이 어제는 나에게 즐거운 선물을 건넨 셈이다.

어젯밤, 프로야구가 끝나고 한 잔의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시작해, 두 개의 차가운 캔맥주를 비워내는 동안 완독의 기쁨에 취했다. 일상의 작은 이슈들을 유머러스하게 채워가는 권남희 작가의 필체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 취향이기도 한 ‘자유로운 글쓰기’의 분위기가 『귀찮지만 행복해볼까』 곳곳에서 흘러나와 나를 깊은 행복감으로 물들였다.

자유로운 ‘썰’, 오늘도 글을 읽고 쓰는 이유

가끔은 읽고 쓰는 행위, 그 자체에 몰두하며 나 홀로 자조적인 즐거움을 만끽하곤 한다. 이는 나의 졸저인 『아내가 잠이 든 시각, 나는 글을 쓴다』의 에필로그에 적어 내려갔던 고백이기도 하다.

“글을 쓴다는 것과 이야기를 쓴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평론가의 흉내를 낸다면 세세한 사소함에 집착하는 ‘트리비얼리즘(Trivialism)’의 차이라 하겠지만, 대중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이 과한 정보(TMI)인가 아닌가의 차이다. 더 쉽게 표현하면, 그것이 살아있는 ‘썰’이냐 아니냐의 차일뿐이다.”
– 아내가 잠이 든 시각, 나는 글을 쓴다 에필로그에서

문학의 엄숙함이든 장터의 유쾌한 썰이든, 내가 읽는 글의 바탕에는 구속 없는 자유로움이 존재해야 한다. 거침없는 자유야말로 은퇴를 바라보는 나의 바람이며, 오늘 밤에도 여전히 서가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쓰는 유일한 즐거움이리라.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번역가 권남희 산문『귀찮지만 행복해볼까』 2
아내가 잠이 든 시각 나는 글을 쓴다 <밀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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