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한 조각 주지 않은 나의 레종데트르 프로야구


2026년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아들과 함께한 프로야구 직관

오랜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아들과 함께 2026시즌 프로야구 첫 직관에 나섰다. 치맥을 좋아하는 아들과 모처럼 마주 앉는 시간인 만큼, 무릎 위에 위태롭게 음식을 얹어두기보다 식탁이 있는 테이블석에서 관전하고 싶었다.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찬찬히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의 성적이 중위권에 머물러 있으니 예매쯤은 수월할 것이라 믿었다.

평소 스포츠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딸아이가 조용히 훈수를 두었다. 요즘 야구장 티켓을, 그것도 테이블석으로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이다. 전국의 야구팬들이 모니터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클릭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교묘한 불법 매크로 프로그램이 판치는 세상에서 순수한 열정만으로 자리를 선점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예매가 열리던 날, 딸아이는 친구 세 명을 구원투수로 등판시켰고, 다행히 운 좋은 한 친구의 손가락 끝에서 운좋게 테이블석 한 자리 예약에 성공했다.

프로야구 이야기 ☞

빵 한 조각 주지 않은 나의 레종데트르 프로야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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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하얀 유니폼의 기억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야구 마니아이다. 프로야구 출범 첫 해 첫 게임부터 지금까지 프로야구는 내 삶의 일부분이었다. 나이 들어 무슨 야구냐며 유아적 눈길을 보내는 친구들도 있지만,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마니아의 세계에서 나이나 성별 따위의 숫자가 무슨 경계가 되겠는가.

야구라는 세계가 내 마음에 들어온 건 70년대 초,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주의 자매학교였던 학강초등학교 야구부가 시골로 내려왔을 때, 그들이 입고 있던 눈부신 하얀 유니폼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다. 트레이닝복 한 벌 입기도 버겁던 시절,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를 묻힌 채 집 앞을 지나던 그 하얀 실루엣은 나에겐 거대한 부러움이었다.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야구의 마력에 완전히 빠졌다. 소풍 대열에서 몰래 이탈해 야구장 스탠드로 숨어들 만큼 나의 열정은 뜨거웠고, 일본 직장시절에는 잠시 한국으로 휴가를 나올 때면,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 대신 캐리어를 끌고 잠실야구장으로 먼저 직행하곤 했다.

흐르는 시간, 변해가는 응원문화

시간이 흐르며 나의 응원 열기는 조금 수그러들었다. 한때는 홈팀 응원석의 중심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지만, 이제는 반대편 관람석에 조용히 앉아 경기의 결을 음미한다. 관람석의 풍경 역시 계절이 바뀌듯 변했다. 거친 함성과 담배 연기로 가득했던 아재들의 해방구는, 이제 싱그러운 젊은 숙녀들의 환호로 가득한 세련된 문화의 장이 되었다.

나의 거창한 존재 이유 프로야구

생전의 어머니는 “응원하는 야구팀이 네게 빵 한 조각 쥐여주더냐”라며 아들의 유별난 야구 사랑에 다정한 핀잔을 주시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빵 한 조각 나오지 않는 이 스탠드 위에서, 나는 여전한 야구의 사랑을 감출 수 없다.

거창하게 말하면, 야구는 내 삶의 여유이자 존재 이유인 ‘레종 데트르(Raison d’être)’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오늘도 프랜차이즈 팀의 열정적인 승리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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