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청빈이라도 괜찮아


43만 원의 자유, 시골집 미니멀 라이프     

겨울의 끝자락, 고요가 머무는 아침

2월의 첫날이다. 습관처럼 아침 루틴을 마치고 마루 한 편의 책상에 앉았다. 공기의 결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창틈으로 스미는 바람에서 시린 기운이 걷힌 것을 보니, 2주간의 강추위가 물러가나 보다. 우선 손이 시리지 않아 좋다.     

고소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잔을 쥐고 창밖을 내다본다. 여전히 들녘이나 마을 길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백색소음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간혹 길고양이 만이 아침먹이를 찾아 마당을 어슬렁거릴 뿐이다.      

일 년의 시간, 영수증에 새겨진 생활의 흔적

오늘은 거래처 전화가 없는 일요일이라는 느슨한 핑계로 유튜브를 보려다, 시선이 안방 기둥에 멈춘다. 시골집에 올 때마다 차곡차곡 모아둔 생필품 마트 영수증들이다. 지난 삶의 흔적을 셈해보고자 모아둔 영수증이 어느새 2025년 한 해의 두께만큼 쌓여 있다.

광주를 떠나 시골집을 향할 때, 아내는 볶은 콩, 장조림, 계란말이 같은 소박한 밑반찬을 챙겨준다. 나의 단출한 식성으로는 2~3주 지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성찬이다. 아내의 정성이 합쳐진 밑반찬과 읍내 마트에서 산 생필품이 나의 시골살이의 원동력이다.

2025년 한 해의 영수증을 펴서 계산기를 두드려 본다. 좋아하는 캔맥주 포함 2~3주 마트 생필품 구입이 월평균 18만 원정도이다. 엑셀로 정리한 전기세, 수도세, 가스비, 보일러 유류비, 인터넷 사용료는 월평균 7만 원 정도이다. 광주와 시골집 왕복 자동차 유류비와 톨게이트비는 1회 평균 3만 원 정도이고, 마을 사람과의 외식비는 월평균 10만 원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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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청빈이라도 괜찮아 1

소박함과 비루함 사이, 아이러니한 위로

나 홀로 시골집 2~3주 체류비용으로 잡손실 5만 원 포함 월평균 43만 원 정도를 소비하는 셈이다. 하루 두 끼의 소식(小食)과 편식이라는 핀잔 듣던 식습관이, 시골집에서는 지출을 줄이는 유리함으로 치환된다는 사실이 묘한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물론 광주에 가면 또다른 생활이 시작되지만 말이다.    

선비의 지조 청빈 

청빈(淸貧)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본다. 사전적 의미로는 “성품이 깨끗하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는 가난함”이다. 한 마디로 맑고 가난함이다. 옛 선비들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고 유학을 숭상했기에 청빈은 선비의 지조를 보여주는 덕목으로 여겼다. 의연한 선비의 고품격 자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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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동경

평소 미니멀라이프를 동경하며 시골집에서의 청빈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것이 의도된 고결함인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반영인지는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깨끗한 성품”이라기엔 짜증과 비굴함을 다 버리지 못했고, “무욕”이라기엔 부와 명예를 좇던 지난날의 갈망이 여전히 회한으로 남아 있다.     

나의 청빈은 ‘어쩔 수 없는 청빈’이 맞다. 능력의 한계로 다다르지 못한 욕망을 포기가 아닌 ‘내려놓음’이라는 말로 합리화하며, 나는 마음의 평온을 얻는다. “소유를 줄이면 자유가 늘어난다”던 법정 스님의 말씀이, 비루할 수도 있는 나의 일상에 따스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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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에 채워지는 낭만

시골집에 오면 어쩔 수 없는 청빈의 생활이지만, 날이 갈수록 안빈낙도의 미니멀라이프가 마음에 든다. 청빈으로 덜어낸 소유의 자리에 읽고 쓰는 즐거움이 들어차고, 음악과 함께 맥주 한 잔을 기울이는 혼술의 낭만이 흐른다. 비록 나의 젊음은 가고 없으나, 그 빈자리를 고요한 자유로 채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나이 듦이 주는 축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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