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억 여행
아야세의 추억을 찾아서
도쿄의 다카사고(高砂) 역 근방에 사는 ‘오네상(누님)’을 찾으려던 시도는 끝내 물거품이 되었다. 35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간과한 탓일까, 추억을 더듬어 찾기엔 너무 늦은 방문이었다. 진한 아쉬움이 발목을 잡았지만, 추억이라는 기억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 목적지인 아야세(綾瀬) 역으로 향했다.
그 시절, 한국 직원들의 기숙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지요다선(千代田線)이 지나는 아야세(綾瀬). 아야세 역 앞을 지키던 커피숍은 이방인인 우리들의 임시 안식처이자 만남의 광장이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고도 남았을 시간, 과연 그 카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숨 쉬고 있을까?
1989년 6월 밤의 낯선 공기
1989년 6월. 선임을 따라 밤 9시 무렵 나리타 공항에 착륙했다. 생애 첫 비행, 첫 일본 입국이었다. 공항 로비의 TV에서는 도쿄돔의 함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경기가 중계되던 그 화면을 마주하고서야, 야구광인 나는 비로소 일본이라는 낯선 타국을 실감했다.
밤 11시가 다되어 도착한 아야세역(綾瀬駅). 동쪽 출구에 있던 커피숍에는 일본 내 한국 직원을 총괄하던 이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렘과 긴장 속에 도착한 내게 프로젝트의 개요를 설명하고 체재비를 건네주던 그 밤의 기억, 그리고 셋이서 나누던 커피 향은 앞으로 펼쳐질 일본 생활의 서막과도 같은 달콤함이었다.
향수를 나누던 주말의 아지트
그 후, 토요일이면 도쿄 곳곳에 흩어져 IT 개발 프로젝트와 사투를 벌이던 한국 직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아야세역 카페로 모여들었다. 회사의 공지사항이 전달되고 나면, 카페는 곧바로 그리움을 나누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인터넷은커녕 국제전화도 쉽지 않던 시절, 우리는 그동안 한국식당에서 김치를 몇 번 먹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리곤 고국의 소식을 조각조각 맞추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랬다.

다나카 부동산의 ‘동무’와 사라진 골목길
아야세역에 도착하니 익숙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토요카도 쇼핑센터였다. 이곳의 오랜 기억들이 희미하지만 코끝 시큰하게 다가왔다. 인척의 부탁으로 처음 만보기를 샀던 이토요카도였다. 좀 더 옛 기억을 더듬어 동쪽 출구로 나가니, 시야 끝에 어떤 카페가 어렴풋이 들어왔다. 지금은 당시의 카페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바로 그 카페라고.
미음 같아서는 어서 그 카페에 들어 가고 싶었지만, 아야세역 주변 거리를 마저 둘러보기로 했다. 주변을 살피니 ‘다나카(田中) 부동산’ 간판이 눈에 띄었다. 35년 전에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은 일본에서 쉽게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배타성이 강한 일본인의 특성이었다.
하지만 다나카 부동산에서는 한국직원의 기숙사를 잘 구해주었다. 특히 조총련계 재일교포 3세였던 영업 담당자는 우리를 볼 때마다 “동~무”라고 불렀다. 남산에서 반공 교육까지 받고 비자를 취득한 우리에게 그 호칭은 꽤나 등골 서늘한 경험이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그리운 에피소드가 되었다.
도쿄에서 첫 밤을 지냈던 기숙사는 끝내 찾을 수 없었다. 목조 건물이 즐비했던 골목은 온데간데없고, 반듯한 바둑판 도로와 2층 패널 주택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곳곳에 붙은 공사 푯말은 이곳 역시 재건축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내가 머물렀던 첫날 밤의 기숙사는 이제 지도 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린 것이다.

35년 전 그 모서리, 멈춰진 시간
아쉬움을 뒤로하고 드디어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아야세역 카페에 섰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의 카페치고는 꽤 넓었던 그곳, 우리가 늘 점거하다시피 했던 구석진 자리는 아직 남아 있을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시선은 본능적으로 왼쪽 구석을 향했다.
순간, 눈가가 뜨거워졌다. 눈물이 흐를 지경으로 마음이 흔들렸다. 반가움 기저에 깔린 아쉬웠던 지난 날의 회한이리라.

이십대 마지막 청춘과 육십의 내가 마주 앉아
카페의 인테리어는 조금 세련되게 변했다. 공간은 당시의 기억보다 작아 보였지만, 분명 그때 그 자리였다. 35년 전, 치열하게 젊음을 불태우던 한국 직원들이 모여 웃고 떠들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그 구석진 공간에 앉았다. 35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당시 나를 인솔했던 선임은 아직도 아야세 동네에 살고 있다고 한다. 혹시나 선임이 커피를 마시러 오지 않을까, 문 쪽을 자꾸만 곁눈질하게 했다.
끝내 선임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가 커서 주변 손님들에게 눈총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떠들던 그 시절, 우리의 왁자지껄한 소음만이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했다.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처음 앉아, 어느새 육십 대가 되어 앉아 있다. 가슴 먹먹한 회한과 진한 그리움 그리고 추억이 커피 향과 뒤섞여,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다. 언젠간 다시 찾아보고픈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카페이다.
매년 가을이 되면 도쿄에 가고 싶다. 1960년 대, 대표적 차도녀이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저자 전혜린은 뮌헨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 2년 째에 “자꾸만 뮌헨의 가을이 그립다” 라고 했다. 나 또한 그러한 그리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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