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다카사고(高砂)역 기숙사를 찾아서
홀로 더듬어 떠나는 추억 여행
일주일간의 가족 일본 여행은 꿈결처럼 지나갔다. 아내와 아들은 하코네의 온천 료칸에서 묵은 피로를 씻어내고 먼저 귀국하여 일상으로 돌아갔다. 시간의 여유가 있는 나와 딸은 도쿄에 남아 며칠간의 각자 개인 일정을 이어갔다.
나의 이번 여행 목적 중의 하나는 청춘의 추억을 찾아가는 것이다. 35년 전, 1989년 청춘의 한 페이지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 곳, 게이세이선(京成線)이 지나가는 다카사고(高砂) 역 근방에 살았던 나의 첫 일본 생활의 추억이다.
타닥거리는 타자기 소리와 ‘오네상’의 기억
도쿄의 변두리, 다카사고 역 인근에는 나의 20대를 마무리하던 원룸 기숙사가 있었다. 낡은 목조 건물과 다다미 냄새가 배어있던 1층 목조 원룸 옆에는 집주인인 다카하시(高橋) 상이 살고 있었다.
당시 40대 후반으로 여겨지는 독신 여성이었던 그녀는, 스무 살이나 어린 이방인 청년에게 ‘주인아주머니’ 대신 ‘오네상(누님)’이라 불리길 원했다. 지금 오네상이 살아 있다면 80대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오네상의 방에서는 늘 경쾌하면서도 규칙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 타닥. 오네상은 청타의 직업을 가졌던 타이피스트였다.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들려오던 그 타자기 소리는 낯선 타국 생활에서 나에게 편한 안정감을 주곤 했다.
가끔은 나에게 과일을 가져다 주기도하고, 일본 문화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던 오네상이었다.
분홍색 줄무늬 파자마의 온기
1년 후, 요코하마 프로젝트를 위해 도쿄의 다카사고 기숙사를 떠나 가나가와현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다시 후지산(富士山)이 있는 야마나시(山梨)로 파견 근무를 갔다.
후지산 마을의 해발고도가 높은 지대라 그랬는지, 고막에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한국에서 수술했던 중이염이 재발한 것이다. 소도시 병원에서 중이염 재수술을 받고 한 달간 병실에 누워 있을 때, 내 생일 날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다카사고의 오네상이었다. 먼 길을 마다않고 찾아온 그녀의 손에는 분홍색 줄무늬 파자마(잠옷)이 들려 있었다.
남자인 내게 분홍색이라니. 쑥스러워하던 내 모습에 소녀처럼 웃던 그녀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의 일기장 귀퉁이에는 ‘분홍색(?) 잠옷’이라는 짧은 메모가 남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병문안 선물이 아니라, 타국에서 외로이 아파하던 청년에게 건넨 누님의 정이었다.

사라진 골목, 낯선 풍경이 되어버린 추억
설레는 가슴을 안고 다카사고 역 플랫폼에 내렸다. 무려 35년 만이다. 기억의 지도를 더듬어 골목으로 들어섰다. 역에서 나와 몇 걸음, 그리고 모퉁이를 돌면 그 낡고 다정한 목조 건물이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5분을 걷고, 다시 10분을 헤매도 내 기억 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정했던 목조 주택들은 온데간데없고, 그 자리엔 차가운 콘크리트와 매끈한 패널로 지어진 2층 집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었다. 내가 살던 집은 물론, 수건을 목에 걸고 드나들던 동네 공중목욕탕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공간은 그대로인데 시간만이 야속하게 변해버린 것이다.

회전 초밥집이 꽃집이 되다
망망대해 같은 낯선 골목에서 유일하게 나를 반겨준 것은 ‘이토요카도(Ito-Yokado)’ 쇼핑센터였다. 지금 보면 소박한 동네 마트일 뿐이지만, 35년 전 내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있는 화려한 백화점 같았다.
특히 쇼핑센터 별관에 있던 회전 초밥집은 나의 단골 식당이었다. 일본어가 서툴러 항상 마구로(참치), 에비(삶은새우), 이카(오징어)만 주문하던 나를 보며, 젊은 여성 셰프는 “언제나 그 세 가지만 드시는군요”라며 웃곤 했다.
그 추억을 맛보려 별관을 찾았으나, 회전 초밥집이 있던 자리엔 화사한 꽃집이 들어서 있었다. 비릿했던 초밥의 향기는 사라지고 꽃내음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아름답지만, 어쩐지 서글픈 변화였다.

너무 늦게 부치는 편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장을 보러 나온 백발의 다카하시 오네상과 우연히 마주치는 기적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하지만 35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길었다. 설령 우리가 스쳐 지나간다 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집도, 골목도, 오네상의 안부도. 오직 이토요카도라는 낡은 간판 하나만이 이곳이 내가 살았던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골목은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추억을 덮어버렸고, 나는 너무 늦게 이곳을 찾았다.
“오네상, 잘 지내시나요?”
허공에 흩어지는 물음만을 남긴, 너무 늦게 부치는 수취인 불명의 안부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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