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식탁이 주는 평안함


환영받지 못하는 나의 음식 취향

텅 빈 식탁이 주는 평안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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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가 머물다 간 자리

미운자도 보내고 나면 울컥 서러워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으레 서늘한 바람이 고이는 법이다. 정겹던 친지가 머물다 떠난 시골집에 홀로 남으면 찰나의 허전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내 박경리 선생의 문장을 떠올린다. ‘사람은 더불어, 그리고 혼자 사는 존재’라고. 화기애애의 분위기가 남긴 허전함의 여백 위로, 나만의 고요가 스며들 시간을 기꺼이 맞이한다. 그 시작은 식탁의 평온을 되찾는 일이다.     

혀끝에서 잠시 피어난 맛

시골집 지척에 사는 누님은 손맛이 좋다. 어머니 다음으로 누님의 손맛에 많이 익숙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에도 누님의 요리 솜씨는 상위 레벨인 것만은 확실하다.      

푸짐하게 차려낸 남도의 밥상은 내 까다로운 미각마저 활기를 찾는다. 혀끝에서만큼은 식도락의 미학이 잠시나마 찬란히 꽃을 피우는 순간이 된다.



맛집 지도가 불필요한 나의 내비게이션

화려한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남은 음식들을 보면 식도락의 미학은 사라진다. 풍요로움이 남긴 낭비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된다. 환영받지 못하는 나의 오랜 어두운 그림자이다.     

내가 맵고 비린 것을 꺼리는 편식을 해서 그렇지, 밥맛이 없거나 반찬이 없다고 밥을 못 먹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브랜드 마케팅으로 비싸진 음식이나 음료의 맛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외국 여행 중에도 로컬 음식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한인 식당에 관심이 있는 편이다.

내게 있어서 밥이란, 허기만 채우면 되는 수단의 대상이지 결코 즐기는 대상은 아니다. 출장 중에 김밥과 라면을 자주 찾는 이유이다. 편식에 따른 건강의 약점은 평생 안고 갈 불청객이지만 나의 운명으로 여긴다.     

텅 빈 식탁이 주는 평안함 2
간결한 식탁 앞에서 평안함을 느낀다.

나를 위한 단 한 사람의 식탁     

어제 친지가 떠나고 남은 음식을 조용히 정리했다. 누군가 본다면 낭비라며 혀를 찰 것이다. 하지만 요란한 세상을 피해 나의 미니멀 세계를 지키는 어쩔 수 없는 나만의 방식이다.

나는 냉장고가 적당히 비어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 음식 공해에서 벗어나 텅 빈 마음의 충만을 얻기 때문이다. 음식도 소유를 줄이면 마음의 여유와 설거지 자유가 늘어난다.   

마침내 내 앞에 놓인 것은 단출한 밥 한 그릇과 구수한 된장국, 그리고 정갈한 김치 서너 조각. 이 간결한 식탁 앞에서 나는 비로소 완전한 평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 홀로 ‘고요와 한적’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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