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텃밭의 다른 시간으로 흐르는 삶의 소묘
한 텃밭에서 펼쳐지는 서로 다른 가을
도시에 나간 지 2주 만에 시골로 돌아왔다. 새벽공기가 제법 차가워졌다. 올여름 34도를 오르내리던 온도계는 14.2도를 가리키고 있다. 활동하기엔 무난한 온도이지만 창문을 열고 지내기엔 다소 썰렁한 온도이다.
책상에 앉아 뜨거운 커피 향을 입술에 적신 채 텃밭으로 시선을 옮긴다. 거기엔 서로 다른 속도로 가을을 빚어내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서 있다.
같은 텃밭에 심어진 감나무인데도 한 그루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채 붉은 감만 덩그러니 매달려 있고, 한 그루는 붉은 감은 다 떨어지고 나뭇잎만 남았다. 서로 다른 속도로 가을을 빚어내는 두 나무의 모습이 대조적이면서도 신기하다.
두 나무가 전혀 다른 가을맞이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를 찾아보았다. 품종의 특성, 나무의 생육 상태 그리고 위치나 환경에 따른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각각의 나무가 결실을 지켜내는 방식
잎을 먼저 털어내고 열매만 남긴 나무는 초겨울의 기온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떫은 감나무다. 잎으로 향하던 생명의 온기를 스스로 거두어들여 낙엽으로 떨어뜨리고, 그 모든 영양을 붉은 감에게 몰아주어 다가올 추위를 견디게 한 것이다. 이런 감나무는 홍시로 오래 매달아 두는 게 나을 수 있다.
반대로 붉은 감을 떨구고 잎만 남긴 나무는 이미 제 소임을 다해 일찌감치 결실을 내려놓은 까닭이다. 붉은 감이 간직했던 영양분까지 고스란히 껴안은 나뭇잎은 더욱 깊고 진한 단풍으로 물들어 가지를 지키고 있다. 지난날 자연 낙과된 감이 마당에 자주 뒹굴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잎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붉은 감이 도드라지게 시야에 들어온다. 시골의 늦가을 풍경에서 익숙하게 만나던 ‘까치밥’의 형상이다. 잎사귀는 제 소명을 마치고 이미 흙으로 돌아갔으나, 남겨진 열매는 마지막까지 자연의 순환을 기다리고 있다.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가는 삶의 유용성
같은 텃밭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두 감나무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짚어본다. 우리 역시 각자가 처한 환경과 능력, 그리고 저마다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삶을 일구어간다. 그렇기에 누구도 타인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 나아가는 방향도 그 끝에 맺히는 결실의 모양도 결코 같을 수 없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가호》를 읽으며 마주했던 발터 벤야민의 명언이 귓가에 맴돈다. “좋은 이야기에는 반드시 어떠한 유용성(쓸모)이 담겨 있다.”
좋은 인생에도 좋은 유용성이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방향과 결과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우리 각자의 삶 역시 저마다의 숭고한 유용성을 품고 결실을 맺어가야 함을 조용히 헤아려보는 11월의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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