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끝자락, 추억을 걷다


가을과 겨울의 문턱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도심으로의 외출

오늘은 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다. 하지만 화창한 날씨를 선사하는 아름다운 주말이다. 가을이 떠나고 겨울이 도착하는 계절의 길목이다. 베란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화창한 햇살이 나를 유혹하듯 손짓한다. 외출복을 챙겨 입고 도심 산책을 나선다.

보름 남짓 한적과 고요만이 감돌던 시골집의 정적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광주집 도시 거리의 활기를 마주한다. 주말 오전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의 재잘거림마저도 참으로 싱그럽다. 그들의 소란스러움은 소음이 아니라 생의 활력이다.

문득 나의 학창 시절을 되돌아본다. 왜 그때의 나는 저들처럼 재잘대지 못하고, 조용하려고 애썼을까. 그때 못다한 재잘거림이 모여 지금의 나를 ‘썰장이’로 만들었을까? 아무튼 지나간 시간은 늘 아쉬움을 동반하지만, 오늘 마주한 학생들의 웃음소리는 그 아쉬움마저 반갑게 한다.

계절의 끝자락, 추억을 걷다 1
2025.11.22 예향 광주

맥도널드 2층 창가, 청춘의 맛을 소환하다

거리를 걷다 눈에 들어온 맥도널드가 오늘따라 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끌림이다. 평소 즐겨 찾는 불고기버거 세트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들고 2층 창가에 앉는다. 오늘은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풍경보다 내 혀끝에 닿는 이 익숙한 맛이 더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마꾸도나루도 한바가(マクドナルド·ハンバーガー,맥도널드 햄버거)는 나의 20대 끝자락, 낯선 땅 일본으로 직장을 옮기며 자주 마주했던 간식이었다. 아니, 간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주식(主食)이었다. 하루 세끼를 꼬박 챙겨 먹었던 나의 청춘시절, 아침 출근길에 어김없이 베어 물던 그 햄버거에는 나의 젊음과 고독이 함께 배어 있었다.

다시 돌아온 입맛, 회귀하는 기억들

일본에서의 처음 3년 동안 자주 먹어 질려버렸던 탓일까. 귀국 후 결혼을 하고 나서는 햄버거가 내 입맛의 목록에서 지워졌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최근 들어 다시금 그 맛이 강렬하게 당긴다.

가끔은 야식으로 배달까지 시켜 먹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입맛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시절의 추억이 그리워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혀끝에 감도는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의 맛은 단순히 미각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정서를 불러오는 매개체가 된다. 입맛도 추억을 따라 회귀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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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자락, 추억을 걷다 2
2025.11.22 예향 광주

가을 우체국 앞에서, 멜로디에 젖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붉은 간판이 인상적인 우체국 앞을 지난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귓가에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들려오는 듯하다.

비틀즈의 “Yesterday”나 진추아의 “One Summer Night”처럼 첫 소절 외에는 뒷부분 가사는 희미하고 멜로디만 흥얼거리는 옛 노래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또렷하다. 단풍잎이 붉게 젖어 있는 가로수 길, 그 곁을 지키는 우체국은 그 자체로 한 편의 詩가 된다. 나도 모르게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걷는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참으로 아름답고 서정적인 가사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 기다림 속에서 계절이 저물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 그 낭만이 가슴을 울린다. 가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은 크지만, 다가오는 겨울에는 또 다른 하얀 낭만이 지금의 아쉬움을 달래주리라 믿는다.

노오란 은행잎과 붉은 단풍이 채색하는 거리에서, 나는 조용히 읊조린다. 안녕, 나의 가을이여~.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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