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 속에 찾아온 예술의 갈증


르누아르의 색채와 질감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평온에 묻힌 미학적 허기

2025년은 내 생애 가장 평온한 한 해였다고 자평했다. 은퇴가 가까워지고 빈집이 된 시골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맞이하게 된 평온이었다. 하지만 그 평온 속에는 아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중 하나가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에 가는 발길이 끊겼던 점이었다. 이는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미학적 허기였다.

이번 겨울, 일주일 일정으로 일본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3일은 온천지에서 보내고 나머지는 도쿄에서 보냈다. 그중 도쿄에서의 3일간은 우에노공원 근방에 숙소를 잡았다. 올해 음악회와 미술관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한 일정이었다.

평온 속에 찾아온 예술의 갈증 1
국립서양미술관(国立西洋美術館) 인상파展

문화의 숲, 도쿄 우에노 공원

우에노공원에는 ‘문화의 숲’이라 불릴 만큼 여러 문화 시설이 모여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 국보와 중요문화재가 있는 동경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을 비롯해서, 그림 전시관인 국립서양미술관(国立西洋美術館), 동경도미술관(東京都美術館), 모리미술관(上野の森美術館)이 있고, 클래식 콘서트장인 동경문화회관(東京文化会館)등이 있다. 팬더곰으로 유명한 上野動物園도 우에노공원 안에 있다.

내 취향의 전시회는 국립서양미술관과 동경도미술관 두 곳에 개최되고 있었다. 르 꼬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로써 세계문화유산을 등재된 국립서양미술관에서는 “오르세미술관 인상파展”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동경도미술관에서는 일반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고흐의 주변 후손들이 소장한 작품인 “고흐展”이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회에 가면 반나절을 보내는 나의 취향이기에 첫째 날은 인상파展, 둘째 날은 고흐展을 계획했다. 하지만 첫날 인상파展 밖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튿날 찾아간 고흐展에는 맛 좋은 일본의 생맥주와 여행에 취해 깜박 월요일 휴관을 망각한 것이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 또한 여행이 주는 헐렁한 낭만이라는 자기합리화로 치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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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속에 찾아온 예술의 갈증 2
동경도미술관(東京都美術館) 고흐展

국경을 넘어 다시 만난 소녀들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한 어느 날, 우연히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를 보았다.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특별전 포스터가 보였다. 그중에 르누아르에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작품이 눈에 띄었다.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귀국 전에 우에노공원의 국립서양미술관에서 감상했던 작품 아니었던가?

급히 휴대폰을 열어 여행지에서 찍어온 사진과 국중박의 작품을 대조해 보았다. 소녀들의 구도는 같았지만, 배경이 미묘하게 달랐다. 마치 뭉크가 ‘절규’를 여러 버전으로 남겼듯, 르누아르 역시 이 순간을 여러 점의 화폭에 담아두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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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 속에 찾아온 예술의 갈증 3

‘애르(Erre)’, 행복을 그리는 사람을 닮고 싶다

난 르누아르의 그림을 좋아한다. 세상의 우울함 대신 긍정과 환희를 캔버스에 채웠던 그를 사람들은 “행복의 화가“, “긍정의 화가”라고 부른다. 그런 그의 색채가 주는 부드럽고 따스한 질감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내 지인은 이런 나를 “애르”라는 애칭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르누아르의 풀네임(Pierre-Auguste Renoir) 중에 erre만을 따온 것이다.

젊은 날부터, ‘쟝 아제베도’라는필명을 사용하고 있다. ‘쟝 아제베도’는 프랑수아 모리악의 소설 “테레즈 데케루”의 지적인 인물이다. 요즘은 ‘애르’라는 애칭도 가끔 사용한다.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끝내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르누아르처럼 살고 싶기 때문이리라.

2026년, 평온 위에 예술을 수놓다

지난 2025년의 평온함이 밑그림이었다면, 새롭게 맞이한 2026년에는 그 위에 다채로운 색을 입히고 싶다. 읽고 쓰는 즐거움 외에도 음악회에 가고, 갤러리를 거닐며 평온 속에 묻히는 감각들을 깨울 것이다.

고요한 평온의 삶 속에 예술이라는 꽃을 더한다면, 내 삶은 좀 더 우아한 한 폭의 명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새해에는 나의 ‘애르’적인 삶이 조금 더 짙어지기를 소망한다.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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