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개인주의는 언제부터였을까


공존과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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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연휴의 사색

추석 연휴의 끝자락, 고요가 깃든 오후이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골 성묘, 소박한 외식과 정겨운 술잔 속에서 가족의 온기를 누렸다. 아들은 다시 서울로 향했고, 아내는 병원 근무를 위해 출근을 했다.

오늘은 조용히 책장을 넘기다 창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긴다. 베란다에 서서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며 나만의 사색 속으로 침잠한다. 묵언 수행을 하듯 생각에 잠긴다.

잊혀지는 유대, 스며드는 혼놀

어느덧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의 유교적 위계질서는 점차 사라지고, 수평적 관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익숙해지고 있다. 오랜 전통이 지니던 끈끈한 유대감은 희미해지고, 그 자리를 개인주의의 고독하고도 편안한 익숙함이 채워가는 듯하다.

만인의 세상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인식이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학자들은 데카르트의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아포리즘이 탄생한 시점부터라고 말한다. 이는 곧,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개인주의가 싹텄다는 의미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언제부터였을까 1

불확실의 미래가 드리운 개인의 탄생

내 삶에서 개인주의적 인식이 싹튼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IMF 외환 위기 이후인 것 같다. ‘정리해고’, ‘희망퇴직’, ‘정년백수’와 같은 낯선 단어들이 미래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낙천적인 태도보다는 현실적인 낙관주의를 추구하게 되면서, 내 미래는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는 듯 느껴졌다. 심리적, 물질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앞서나가기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으로 위험을 관리하려는 경향이 짙어졌다. 나의 개인주의는 자아실현의 긍정적 과정이 아니라, 자아의 의기소침함이 가져다준 씁쓸한 결과였다.



가슴에서 머리로, 그리고 다시 가슴으로

칼 포퍼는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들어서 보수가 아니면 머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마다 나이 한 살을 더 먹는 이 순간, 내 자아는 정말 가슴에서 머리로 이동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외치고 싶다. 나의 외침은 진보도 보수도 나이에 상관없이 ‘그때그때 달라요’이다.

공존의 미학을 찾아서

개인주의 안에는 이타심보다 이기심의 무늬가 강하게 자리한다. 감추고 싶은 진실의 그림자이다. 이기적 무례함을 상쇄하는 길은 배려와 이해에 있다. 남은 한 해 동안 싸우지 않고 주변과 잘 어울려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세상이 미워질 때면 김삿갓의 ‘회향자탄’을 읊조리며 마음을 다스린다.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어 해마다 해가 저물면 나 혼자 슬퍼했다”는 구절처럼, 나 자신을 위로하며 고독 속에서도 공존의 아름다움을 찾아본다.

■ 시간 관리를 위한 테크놀로지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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