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혼(魂)
사춘기의 감수성이 짙어지던 시절, 나는 ‘혼(魂)’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김소월의 초혼과 이소룡의 투혼 같은 글귀를 공책 표지에 멋지게 써넣고, 스스로 그 문구들을 자랑스러워하며 흡족해하곤 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서 내 노트에 적힌 그 글씨를 보시고는, 학생 때는 도산 안창호처럼 진취적인 마음을 가지라고 조언하셨다. 늘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르던 나는, 그 충고를 계기로 ‘혼(魂)’이라는 단어와 서서히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딘가 마음이 지칠 때면 그 단어가 다시금 떠오르곤 했다. 특히, 고정희와 최명희의 작품을 접할 때마다 말이다.
고정희 시인은 상한 영혼(魂)을 위하여라는 시를 썼고, 최명희 소설가는 혼불이라는 대작을 남겼다. 이들의 작품을 접할 때면, 제목만으로도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깊은 어둠이 느껴졌다.
고정희와 최명희는 독신으로 살아가다 짧은 생을 마쳤고, 김소월과 이소룡 또한 30대 초반에 요절했다. ‘혼(魂)’이라는 단어가 다소 무겁고도 서글픈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 속에서 울려 퍼지는 ‘혼(魂)’은 내 안의 깊은 곳을 일깨운다. 오늘,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다시금 곱씹으며, 내 안의 혼(魂)을 되새겨본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가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