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이라는 핑계 뒤에 숨은 미안함
벌초의 계절과 다정한 만남
추석을 앞두고 벌초를 마쳤다. 선산에는 총 아홉 봉의 산소가 있지만, 화장 후 평장을 한 두 기를 제외한 일곱 봉의 벌초를 한다. 작년부터는 예초기를 구입해 시골 누나와 직접 벌초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서울에 사는 막내 여동생이 내려와 함께 벌초를 하였다.
아직 서툰 손길의 내가 예초기로 풀을 베어 나가면, 누나와 동생은 흩어진 풀잎들을 갈퀴로 고르게 다듬는 역할을 한다. 처음 벌초에 참가한 여동생은 폭염 끝자락의 갈퀴질이 힘든지 중간중간 쉬어가며 벌초를 마쳤다.
시골집에 형제들이 모이면 으레 마당에서 바비큐를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무더위 속에서 숯불을 피우는 것은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벌초가 끝나고 녹동항 수산센터를 향했다. 마을 이웃이 운영하는 중도매인 매장에서 싱싱한 횟감과 소라를 샀다.

민폐에 가까운 나의 식습관
평소 비린내를 싫어하는 탓에 생선을 멀리하지만 투명하게 뜬 회만큼은 좋아한다. 신라면처럼 조그만 매운 기운에도 콧등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는 미각성 다한증을 앓는 탓에, 초장 대신 간장에 와사비를 그득 풀어 회를 즐기곤 한다. 모두가 알싸한 소주를 기울일 때 거품 가득 맥주를 곁들이면, 주변 사람들은 짓궂은 눈빛으로 혀를 차곤 했다.
생선 비린내는 싫어하면서 회는 마다하지 않고, 생선회에 어울리는 소주를 마다하고 맥주를 마시니,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족속이라며 웃음 섞인 핀잔을 건네는 것이다.
나는 식도락을 즐기지 않는다. 물론 맛 좋은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는 즐거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식사는 그저 허기를 달래는 행위에 불과하다. 그 탓에 풍성하게 차려진 진수성찬을 마주하면 군침이 고이기보다, 미처 비워내지 못하고 버려질 음식들의 낭비라는 인식이 먼저 마음을 스친다. 스스로 돌이켜보아도 참 어지간히 무던하지 못한 성미다.
매운 것 피하고 비린내를 피하다 보면 결국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은 김치와 콩나물류 뿐이다. 간혹 맵지 않게 요리된 계란이나 노릇한 소시지가 보이면 마치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반가워지는 초등생 식성이다.
식성이 이러하다 보니 아무리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젓가락을 움직여도 남들보다 항상 먼저 숟가락을 놓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식성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되도록 식사 후에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내 사정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식사비 아끼려 한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그저 맛있게 먹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오늘은 벌초를 마치고 누나와 동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마침 보성에서 쓸쓸한 말년을 혼자 보내는 매형께서 오셨다. 평소 손이 넉넉한 누나는 안방 가득 푸근한 상을 차려냈다.
‘오늘도 다 먹지 못해 버려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싱싱한 회와 얼큰한 꽃게탕을 들며 담소를 나누는 매형과 동생의 상기된 얼굴을 보니 따스한 흐뭇함이 피어올랐다. 나 또한 여기에 동참해 회와 꽃게탕을 땀을 흘리며 먹었다. 곁에 땀을 닦을 수건을 두고 말이다. (꽃게 매운탕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데, 역시나 콧등에 땀이 베인다)
음식을 먹을 때 나의 바람이 있다. 나의 까다로운 식성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내 눈치를 살피지 말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생선요리나 매운 음식을 마음껏 즐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분위기에 노력은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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