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하여


풍경이 일상으로

시골집에서의 태세전환

날씨가 좋으면 여행의 설렘보다는 빨래나 이불이 잘 마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석양이 물들면 감상적인 산책보다는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창 넓은 찻집에서 낭만의 커피를 생각하기보다는, 장독대와 분리수거 쓰레기를 먼저 살핀다.

밤이 깊어지면 화려한 유혹 대신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이내 꿈나라로 가고, 새벽의 찬 공기가 새소리와 함께 귓가로 찾아들면 늦잠의 달콤함보다 마당을 쓸고 맨손체조 하는 움직임이 더 좋다.

2년 여의 나 홀로 시골 생활에 길들여져 가는 태세전환이자 생활 습관이다.

시골생활 머피의 법칙

홀로 산골 생활을 하는 어느 소설가의 산문집에서 읽었던 기억이다. 어쩌다 면도를 하지 않거나 늦잠을 자는 날에 손님이 찾아오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는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얼굴과 머리에 땀을 흘리기에, 도시에서는 아침 저녁 샤워를 한다. 하지만 겨울의 시골집에서는 2~3일 만에 샤워를 하는 편이다. 기름 한 방울의 무게를 아는 현실의 몸으로 변모해서이다. 따라서 찬물에 세수만을 할 때는 가끔 면도를 거르는 경우가 있다.

시골집에 방문객이 오는 경우는 드물지만, 갑자기 동네 분들과 읍내에 식사하러 갈 때가 있다. 그런 날은 꼭 면도를 하지 않은 날에 발생한다. 일종의 머피의 법칙이리라.

시골생활, 길들여진다는 것에 대하여 1
전기면도를 마친 후 나 홀로 외친다. “심조불산”, “호보연자” 라…

잡념을 지우는 면도와 유머

작년 일본여행 때 겨울에 사용할 전기면도기를 샀다. 요즘은 오후 3시가 되면, 서향집 마루에 있는 거울 앞에 앉아 전기면도를 유유자적 즐긴다. 전기면도기의 미세한 진동 속에서 깎여나가는 수염과 함께 마음의 잡념도 씻겨 내려간다.

말끔해진 얼굴을 씻고 스킨로션을 바르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마치 스님들이 머리를 깎고 세속의 번뇌를 지우듯이 나 또한 잡념을 지운다. 마당을 향해 불심(佛心) 가득한 마음으로 나 홀로 독백처럼 외친다.

“심조불산”, “호보연자” 라…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 드라마에서 명퇴한 선배가 산골에서 홀로 외치던 대사이기도 하다. “산불조심”,“자연보호” 현수막을 거꾸로 코믹하게 외치던 장면을 떠올리며 나 홀로 유쾌히 웃기도 한다.

길들여짐의 평온

빈틈없고 날카롭게만 향하던 디지털 도시 생활에서 투박하지만, 따스한 아날로그의 시골 생활에 길들여져 간다. 화창한 날씨와 차가운 새벽 공기 사이에서 나를 다독이는 것은, 더 이상 머리를 쓰는 기술이 아니다. 가슴에 와닿는 생각으로 가꾸는 소박한 안온함이다. 은퇴를 앞두고 미리 갖게 되는 이 고요한 여유. 내 삶의 평온한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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