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정
스러지는 것들의 애잔함
가을바람이 제법 차갑게 불어온다. 여름 내내 짙푸른 생기로 그늘을 드리워주던 감나무 잎새들은 어느새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눈에 띄게 스러져 가는 애잔함이 가을 한복판으로 성큼 다가선 듯하다.
바야흐로 결혼의 계절, 분주한 주말의 연속이었다. 2주 내내 서울과 대전, 광주를 오가며 축복의 자리에 함께했다. 이번 주말이면 다시 또 서울로 향해 인척의 행복을 빌어줄 예정이다. 삶의 중요한 순간들이 이어지는 동안, 정작 나의 시골집은 텅 빈 채 깊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작은 생명의 쓸쓸한 안식처
싸늘한 가을바람이 감도는 시골집 안방에 들어선다. 작은 새 한 마리가 차가운 방바닥 한쪽에 고요히 누워 있다. 아마도 내가 시골집을 떠나던 날, 문틈으로 스며들어왔던 모양이다. 2주간 닫힌 방 안에서 굶주림에 지쳐 숨을 거두었으리라.
나는 조용히 그 주검을 들어 밭 한쪽의 낙엽 속에 정성스레 묻어준다. 다음 생에는 부디 더 따뜻한 안식을 얻기를 기도하면서…
작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여행 때 보았던, 쇤부른궁 나폴레옹 아들의 방에 박제된 작은 새가 떠오른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아들이었던 나폴레옹 2세. 그는 아버지의 막강한 권력과 영광 속에서도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야 했다.
드넓은 궁전에서 친구 하나 없이, 오직 새들과 벗하며 쓸쓸한 유년 시절을 보내다 요절하였다. 그 작은 새들은 왕자의 유일한 위안이자, 텅 빈 그의 마음을 채워주는 친구였으리라.

마리안 페이스풀, 영혼을 울리는 노래
청춘 시절, 나는 마리안 페이스풀의 노래가 풍기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부른 ‘This little bird’는 내 영혼을 울리는 특별한 곡이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아끼는 이 노래의 번역된 가사도 나에겐 울림을 주었다.
“가여운 작은 새는 평생 허공만을 날다가
일생에 딱 한 번
지상에 내려와 안식에 들어가는 데,
그때가 바로 작은 새가 숨을 거두었을 때”
라는 애틋한 가사. 이 문장들은 작은 새의 운명을 통해 삶과 죽음, 진정한 자유에 대한 깊은 사유를 일깨웠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문득, 전수일 감독의 1999년 작품인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라는 영화 제목이 떠오른다. 한때 그 영화 제목에 꽂혀 OTT 영화를 찾아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유’였다. 드넓은 허공을 마음껏 날아 세상의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 말이다. 그러나 진정 자유롭게만 보이는 새조차도, 출발한 둥지를 떠나 다시 둥지로 돌아오는 순환을 반복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겉으로 보이는 자유 속에도 일정한 궤적이 존재한다.
새가 그리는 폐곡선은 결코 유폐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궤적은 단순한 원이 아닌,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리라.

나의 폐곡선, 자유로운 시골의 삶
어쩌면 지금 나의 시골 생활도 유폐가 아닌, 자유로운 폐곡선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나만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이 삶이, 겉으로는 정지된 듯 보여도 내면으로는 무한한 자유를 탐색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자기연민에 젖어 자주 듣곤 했던 마리안 페이스풀의 ‘This little bird’를 유튜브를 통해 다시 감상해 본다. 그 애잔한 멜로디는 내 안의 작은 새를 깨워, 지난 시간의 회한과 지금의 평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유튜브 마리안 페이스풀의 ‘This little bird’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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