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 프레데리크 그로
화려한 유행의 다변화된 사회에서
홀로된 고독과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 간다.
주위에 보면 가끔,
권태로움에 우울해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권태로움은
계획의 부재와 전망의 부재라고 한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하지만
할 일이 없어 자기주변만을
뱅뱅 도는 것인데,
무슨 일인가를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이 책의 저자는
산책과 도보를 통해 사유했던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요즘은
걷는 게 아니라 ‘트레킹 한다’ 가 유행처럼 되었는데,
걷기는 활기가 없고 반복적이고 단조롭다.
그러나
걷는 단조로움이
권태에 대한 치료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걷기에는 규칙성과
리드미컬한 운동성이 존재하기에
공허한 동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인데
즉,
자극하는 사유의 시간이 된다는 것이기에
걷기의 반복은
무기력함 속에서 무언가 할 일을
찾을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매일 걸으며 사유했던 철학자 중에는
대표적으로 니체와 칸트가 있다.
니체는
결별이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관계의 단절 때문에 힘들어지지만
대신
날개 하나가 생긴다고 했다.
고독이 한층 깊어진다는 것은
곧 그의 자유가 한층 더 확대된다는 것이다.
해명 해야할 것도 없고
타협 해야할 것도 없으니
시야가 탁 트여 멀리까지 잘 보인다는 이야기다.
니체는 하루에 오랜 시간을 걸으며
사유한 결과가 그의 위대한 저서가 되었다고 한다.
규칙성의 모델인 칸트의 삶은
모험적이지 않았다.
고향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을 만큼
여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생을 빚조차 없이 살았고 무질서를
받아들이지 못 했다.
칸트는 자신이 강조한
단조로움, 규칙성, 산책의 필연성으로
오직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산책과 먹는 것으로만 일생을 보냈다.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고
꽉 막힌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칸트의 일상을 방불케 한다는
조정래작가도 규칙적인 일상과 산책이 유명한데
젊은이도 따라오기 힘들만큼 속보로
걷는다고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두 가지 형태의 산책을 했다고 한다.
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에 나오는 스완네집 쪽과
게르망가 쪽이 있었다는 데,
전자는 날씨에 관계없이
주위를 음미하며 걷는 산책이었고
후자는 도보에 가까운
수행의 산책으로 나눴다고 한다.
동시대를 살았고 이름도 비슷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詩
“가지 않은 길”을 염두에 둔,
산책이지 않았을까도 모르겠다.
스님들은 땅거미 진
저녁 산책을 좋아 한다는 데
수도사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아세디아’ 치유의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산책을 하며 많은 생각을 한다.
운전할 때와 샤워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아침,저녁 샤워줄기를 뒤집어 쓴 채
느끼게 되는 찰나의 영감이
나에게는 특별한 사유의 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