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희숙 “믿어도 될까요”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믿어도 될까요, 그 한 마디에 담긴 생의 무게     

취향도 세월 따라     

나이가 들면 취향도 함께 바뀌어 간다. 음악 취향도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들면 클래식이 좋아진다는 말도 있고, 트로트가 좋아진다는 말도 있다. 나의 경우는 어느 쪽인가.

내가 쓴 글에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 그룹이 나오면서 대중가요에서 멀어지고 클래식에 가까워졌다. 30대의 시작 무렵이었다.

두 번째 서른이 지난 요즘, 음악 취향 하나를 더 추가 해야겠다. 고즈넉한 시골집에 나 홀로 머물 때면, 세련된 아메리카노 원두커피보다 달콤하고 텁텁한 믹스커피 한 잔이 더 간절해진다. 그리고 달콤한 믹스커피 향기 위로 7080 대중가요의 서정이 피어나 옛가요를 자주 듣는다.

오늘도 나 홀로 시골집에서 유튜브 음악을 켜고 일을 하는데, 7080가요 중에 반가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임희숙의 “믿어도 될까요”라는 노래였다. 임희숙 가수를 생각하노라니 이 노래는 7080가요가 아닌 6070가요가 아닌가 싶어 찾아보았다. 1975년에 작곡된 노래였다.

“믿어도 될까요 당신이 하신 말씀
사랑한단 그 말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그대의 약속을
내년 봄에 그날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아~나는 행복해요 누구보다 누구보다도
아~그대 변치 마세요 영원히 영원하도록
    

믿어도 될까요 당신이 하신 말씀
사랑한단 그 말을 제가 믿어도 될까요“

언뜻 가사를 들어보면, 애틋함 보다는 통속적인 남녀 간 분위기가 느껴진다. 단순한 노랫말 자체로는 감흥이 일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믿어도 될까요”라는 구절에는 차마 다 뱉지 못한 심연의 사연들이 숨어 있는 듯하다. 멜로디 속에 숨은 심연의 사연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나는 지금껏 누군가에게 믿어 달라고 애원했던 적이 있었던가? 살면서 누군가에서 내 말이 진짜라고 믿어 달라고 했었을 경우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반대로, 나의 믿음을 저버렸던 서늘한 기억 한 가지가 화들짝 떠오른다.



임희숙 “믿어도 될까요”  1

응원의 믿음과 맞바꾼 서글픈 진실

조그만 IT기업을 운영하던 시절의 잔상이 떠오른다. 성실하고 유능했던 한 여성 디자이너가 대학원 진학을 이유로 퇴사를 고했다. 나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며, 석사 과정 동안 필요한 전공 서적이라도 사보라는 마음을 담아 봉투를 건넸다. 그녀의 앞날을 축복하며 건넨 그 응원은 나의 순수한 신뢰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온 소식은 시렸다. 그녀는 대학원이 아닌 경쟁 업체로 스카우트되어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대학원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그녀의 거짓은 내 가슴에 작은 균열을 남겼다. 믿음이 무너졌던 그 소리는 파편이 되어 오늘 또 내 가슴속을 배회한다.     

믿음이라는 부질없고도 고귀한 신기루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믿음의 성을 쌓고 허문다. 나도 누군가의 믿음을 저버린 적이 있었고, 윈윈을 위한다는 핑계로 하얀 거짓말을 했을 때도 있었다. 이렇듯 인간관계의 믿음이란, 다 부질없다는 진부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믿어도 될까요”라고 묻는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확인이라기보다, 스스로가 믿어도 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고독한 다짐이 아닐까 싶다.

현실이 아무리 비루할지라도, 오직 자신 만이 아는, 자신의 속마음 만큼은 믿어도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독백의 바람일 것이다. 오늘은 믹스 커피가 아닌 맥주 한 잔을 들고 임희숙의 “믿어도 될까요”를 다시 감상해야겠다.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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