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12월의 캐럴 낭만


그 시절 겨울 낭만 캐롤송

독유당(獨遊堂) 혼놀이야기 모음

시골집 겨울의 맛 믹스커피

겨울 시골집에 오면 유독 깊은 맛을 내는 커피가 있다. 거창한 원두가 아닌 믹스커피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워 오르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진하고 달콤 고소한 향을 코끝에 대면 겨울 낭만을 느끼게 한다.

첫 모금의 달콤하고 고소함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 퍼지는 온기. 그것은 단순한 카페인 섭취가 아니라,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녹이는 겨울 낭만의 순간이다.

우리가 사랑했던 12월의 캐럴 낭만 1
2025.12.21 시골집

고요해서 더 충만한 ‘마당 멍’의 미학

마루 책상에 앉아 마당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을 좋아한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센 날이면, 두 손의 역할은 멈추고 오직 침묵의 시선만이 깨어난다. 눈이 시릴 때까지 단순한 시골 풍경에 녹아드는 ‘마당 멍’의 시간이다.

오늘은 마을 회관 너머 대나무 숲이 겨울바람에 크게 일렁인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낮은 구름이 내려앉았고, 거센 칼바람에 문풍지가 ‘파르르’ 떠는 소리를 낸다. 마을 사람의 발길도, 길고양이의 모습도 끊긴 적막강산이다.

이 절대적인 고요는 외로움이라기보다 나에겐 충만함에 가깝다. 오롯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고독의 운치를 즐긴다. 시골집에 머문 지 2주가 되었다, 달력을 보니 다음 주가 성탄절이다. 종교적 의미나 특별한 이벤트는 없어도, 아내를 위해 광주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레트로 감성 80년대 거리를 채우던 BGM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떠올리니 잊고 지낸 선율 하나가 뇌리를 스친다. 캐럴송이다. 생각해 보면 거리와 골목에서 무방비하게 캐럴을 들었던 나의 마지막 겨울은 언제였던가.

나의 캐럴송 기억 중의 하나는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던 80년대 서울이다. 청춘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등포의 작은 백화점 전산실에서 근무하던 시절, 12월의 겨울이 되면 매장에는 종일토록 캐럴이 흘러넘쳤다.

퇴근길, 2호선 신림역 골목을 걸을 때면 레코드 가게와 골목 상점에서는 경쟁하듯 쏟아내던 그 경쾌한 캐럴송. 그 시절 나의 겨울은 캐럴송이라는 배경음악(BGM) 덕분에 언제나 밝고 낭만적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12월의 캐럴 낭만 2

도쿄 라이프 이국적 성탄

20대의 마지막 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그 벅차오르던 캐럴의 낭만은 조금씩 퇴색되기 시작했다. 교회가 드문 일본의 거리는 차분했고, 특히 그해는 ‘쇼와(昭和)’ 시대가 저물고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열리던 역사적 과도기였다.

당시 즉위해 있던 아키히토(平成) 일왕의 탄생일이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었기에, 12월의 도쿄는 성탄의 축복보다는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때 처음 느꼈다. 캐럴이 없는 12월은 이토록 건조할 수 있음을 말이다.

캐럴이 사라진 거리 낭만이 사라지다

시간이 흘러 요즘의 12월 거리는 너무나 조용해졌다. 골목을 지키던 레코드 가게는 사라졌고, 소음 규제라는 엄격한 잣대와 저작권이라는 차가운 법의 논리까지 겹쳐 거리의 낭만이 사라졌다. 어쩌면 시대가 그만큼 여유를 잃고 팍팍해진 탓일지도 모른다.

옛시절 12월의 거리에 울려 퍼지던 캐럴은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한 해를 살아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겨울의 배경음악이자 낭만이었다.

캐럴이 사라진 거리는 전보다 춥고 건조하게만 느껴진다. 이제는 재생되지 않는, 그 시절 거리마다 흘러넘치던 낭만의 캐럴 멜로디를 홀로 흥얼거려 본다. 문풍지 우는 소리만 가득한 시골집 마루에서, 다시 믹스커피의 온기에 기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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