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와 삶의 여유


로봇청소기로 덜어 낸 미니멀라이프

자취의 시작, 혼자의 시간     

중학교 2학년 때, 제2의 고향이 된 광주로 전학을 왔다. 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누나를 따라서였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취라는 세계로 들어섰다.

이제는 혼자 밥을 짓고, 혼자 잠이 들고, 혼자 하루를 정리하는 일상은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요리는 여전히 서툴지만, 설거지와 청소 그리고 빨래만큼은 청결의 기본을 유지한 자취생활이었다.

결혼 이후, 도쿄에서의 수년 간의 시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국 생활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그 익숙한 고요 속에서 자취의 삶을 이어왔다.     

요즘 반은퇴의 시간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삶의 속도가 느려진 만큼 시간적 여유가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설거지를 앞두거나 청소를 시작하려 하면, 머릿속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는 기분이다. 매너리즘에 빠진 게으름이라 자책하지만 예전처럼 움직여지지 않는다.



요령이라는 이름의 지혜

최근 읽던 책 속에서 한 문장이 마음을 붙잡았다. 최저시급 1만 원 시대, 가사는 가전에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몸을 쓰는 노동을 줄여야 한다는 것. 내가 하지 않아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기술(Technology)과 도구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령을 피운다’는 말은 게으름이 아니라, 내일을 위해 에너지를 남겨두는 방식이라고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자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자기합리화를 위한 일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작은 실험을 결심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에, 청소는 로봇청소기에 맡겨보기로 했다. 뜨악해하는 아내와 상의 끝에 시험 삼아 로봇청소기를 먼저 이용해 보기로 했다. 특히 두 마리의 반려묘에서 나오는 잔털 처리에 효과가 있을 것 같았다.     

시간관리에 실패하는 이유 ☞ 

로봇청소기와 삶의 여유 1

음악과 명화 이야기 ☞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한 변화

로봇청소기가 도착한 날, 작은 소동이 일었다. 로봇 청소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두 마리의 고양이가 즉각 반응을 보였다. 한 마리는 멀찍이서 경계하고, 다른 한 마리는 하악질을 하며 뒤를 쫓아다녔다. 마치 변화를 싫어하는 듯한 배타적인 고양이들의 행동에 그저 웃을 수밖에.

처음 사용해 본 로봇청소기는 기대보다 괜찮았다. 100%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80% 정도의 만족이었다. 특히 침대 밑 털먼지와 청소 마지막 코스인 벽을 따라 움직이며 고양이 털을 닦아내는 순간, 마음속까지 정리되는 개운함이 좋았다.     

덜어냄으로 얻는 것

로봇청소기를 사용하며 한 가지를 깨닫는 게 있었다. 로봇청소기가 구석구석 청소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잡동사니가 없어야 한다. 구석에 놓인 쓰레기통이나 매트, 의자 등 로봇청소기의 동선을 먼저 치워줘야 한다.

책 속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새로운 것을 들이기 전에, 먼저 비워야 한다는 말이었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선택은 단순해지고, 행동은 가벼워진다. 평소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나의 생활에 부합하는 문장이었다.      

결국 이 모든 변화는 하나로 이어진다. 덜어내는 삶. 손을 덜 쓰고, 물건을 덜 두고, 고민을 덜어내는 것.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여유와 집중이다.

오늘도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로봇청소기는 말끔히 청소를 마쳐놓았다. 두 고양이는 피신을 했는지 보이질 않는다. 언젠가는 두 고양이에게도 익숙한 하루의 루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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