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겪은 13일 금요일의 저주
서구권 미신의 유래
내일 금요일 일정을 점검하고자 캘린더를 들추니, 13일이라는 날짜가 시야 가득히 확대된다. 흔히들 불길하다고 이야기하는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서구 미신의 분위기까지.
서구권에서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날이라고 여긴다. 그 유래는 기독교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인원이 예수를 배신한 유다를 포함 해 13명이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 금요일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프랑스 국왕 필립 4세가 막대한 부를 축적한 템플 기사단을 이단으로 몰아 대대적으로 체포하고 처형한 비극적 날이 10월 13일의 금요일에서 기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아폴로 13호의 비극적인 13이라는 숫자.
유래야 어찌 되었건, 이 오래된 미신적인 저주의 분위기를 내가 경험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내가 겪은 13일의 금요일
2015년 11월 13일.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나는 파리에서 나 홀로 첫 여행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파리 여행의 첫날은 벅찬 감동 그 자체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밀로의 비너스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 원석과 사모트라케 니케 조각상을 직접 마주한 순간은 사진으로만 보던 예술의 숨결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었다.
스탕달의 기분을 만끽하며, 호텔로 돌아와 내일의 일정으로 오르세 미술관과 발자크 문학관 방문을 계획했다. 본격적인 나 홀로 자유여행을 기대하며, 기분 좋은 피로감 속에서 보르도 와인 한 잔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밤중, 카카오톡 알림과 휴대폰 벨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단잠을 깨웠다. 여행의 피로에 지친 나는 외부 상황을 애써 외면한 채, 어둠 속에서 더듬더듬 휴대폰 전원을 강제로 끄고 다시 깊은 수면에 빠졌다. 그것이 ‘13일 금요일 밤의 저주’를 알리는 경고였음을 다음 날 아침에야 깨달았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 무의식적으로 TV를 켠 후, 휴대폰을 열어보니 평소보다 많은 양의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 TV에선 긴박한 테러 상황이 끊임없이 보도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어 방송이었지만 화면만으로도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하기엔 충분했다.
간밤에 파리 시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인 연쇄 테러가 발생해 13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이 밤새도록 나의 안부를 묻기 위해 애타게 연락했던 이유가 바로 이 비극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파리의 비극적 우울
상황을 살피기 위해 내려간 호텔 로비는 예상외로 여행객들의 큰 동요 없이 차분했다. 단체 관광객은 예정대로 버스에 올랐고 개인 여행객들도 무리를 지어 일정을 소화하러 나섰다. 하지만 테러범들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 경계의 사각지대를 뚫고 추가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불안감은 여전히 도시를 감돌고 있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세느강변의 헌책방 거리인 부키니스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거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가난한 무명작가 시절 거투루드 스타인의 도움을 받기 전 자주 찾았던 그 길을 걸으며, 가난한 예술가들의 희망이었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이 떠올랐다.
전날 이미 방문하여 피아노가 놓인 이층까지 꼼꼼히 둘러보았지만, 특유의 책 냄새가 그리워 다시 그곳을 찾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서점 현관에는 간밤의 끔찍한 테러로 인해 임시 휴업을 한다는 안타까운 메모만이 쓸쓸하게 붙어 있었다.
다시 세느강을 따라 국회의사당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에펠탑까지 걸었다. 낭만의 도시 파리는 하루아침에 중무장한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와 다급하게 오가는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로 뒤덮여 있었다. 아직 오후 일정이 남아 있었지만, 한국에서 밤새 애태우며 안부를 묻는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 어린 연락이 계속 이어졌다.

멜랑꼴리에 젖은 파리
결국 주위의 염려와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샹젤리제 거리의 저녁 나들이를 포기했다.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평소라면 아름다웠을 거리에 이리저리 뒹구는 파리의 낙엽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멜랑꼴리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낭만의 도시가 하루아침에 130여 명의 핏빛 비극과 애끓는 사이렌 소리로 뒤덮였던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의 그 기억이…
어느새 10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지만, 정녕 그날이 서구권의 미신이라는 ‘13일 금요일’의 저주였을까? 결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그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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