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래초등학교 100년

100년의 시간 나의 초등학교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작은 초등학교가 작년 2024년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모교의 이야기다. 중학생이 되며 떠나온 고향이기에, 그곳의 풍경은 늘 시골누나를 통해 전해 듣는 아련한 소식일 뿐이었다.
‘백 년이라니….’ 까까머리 소년이 노을을 보며 집으로 향하던 그 흙길 위에, 한 세기의 시간이 내려앉았다는 사실이 아득하다. 오늘, 누나에게 <봉래초등학교 100년사> 책자를 건네받았다.
먼저 46회 졸업생인 나의 동창 161명의 이름을 살피고, 다시 첫 장부터 추억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러다 익숙한 오선지와 가사에 눈길이 멈췄다. 초등학교 교가였다. 그런데 악보 위에는 (구)교가와 (신)교가라는 낯선 표식이 있었다.
언제 우리 교가가 바뀌었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연혁을 살피니, 불과 몇 해 전인 2020년에 교가가 바뀌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교가가 바뀐다는 건 상상해 본 적 없는 일이기에 궁금했는데, 다행히 책장 한편에는 그 사연이 적혀 있었다.
‘학도’가 품었던 시대의 그림자
1924년에 개교한 초등학교는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일곱 명의 일본인 교장을 거쳤다. 그때 만들어진 교가 가사에 ‘학도’가 친일적인 단어라는 것이었다. 학도(學徒)는 한자이긴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에 제국주의의 색채가 강하게 묻은 단어였기에 친일 잔재 청산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배경을 알 리 없었던 어린 시절, 나는 교가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조회 시간이나 학급 회의 때 다 함께 교가를 부르면, 알 수 없는 벅참이 작은 가슴을 가득 채우곤 했다. 마치 노래 가사처럼, 정말로 강철 같은 기상이 온몸에 흐르는 듯했다.
우렁찬 태평양의 물결소리는
억만백사 굴리어 옥을 만들고
창공에 솟아오른 청송정기는
강철 같은 봉래의 기상이로다
희망의 슬기 있는 청아한 학도야
빛나는 봉래전통 교풍 이루세.
지금 다시 불러봐도 참으로 마음에 드는 (구)교가의 가사이다.
하얀 뱀과 하얀 모래알, 순수했던 오해
특히 “우렁찬 태평양의 물결소리”로 시작하는 첫 소절은 섬마을 나로도의 작은 바다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대양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당시는 ‘억만백사’의 뜻을 몰랐다. ‘백사(白蛇)’ 즉 하얀 뱀이 억만 년을 살아 영롱한 구슬(玉)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착각으로 자랑스럽게 노래를 불렀었다.
성인이 되어 동창회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억만백사(億萬白沙)란, “수많은 하얀 모래알이 파도에 씻겨 보석처럼 빛난다” 라는 멋진 의미였다. 초등학교 옆 은빛 해수욕장의 풍경을 떠올리면 더욱 아름다운 교가 가사라는 것이 느껴진다.

추억의 책장을 넘기는 밤
지금의 나로도는 1994년 연육교가 건설되어 자동차로 왕래가 가능하다. 저 멀리 태평양의 바닷물이 직접 흘러드는 위치이고, 지반이 튼튼하여 현재의 우주발사센터가 들어서는 환경이 되기도 했다.
시골집에서 나로도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면 닿는 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지만, 발길이 뜸해진 지 오래이다. 어릴 때 동무들도 모두 도회지로 떠났기 때문인데, 동무들도 나이가 들면, 시나브로 흙냄새 나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귀거래사’를 꿈꾸게 될까?
오늘 밤은 <봉래초등학교 100년사>의 추억의 책장을 길잡이 삼아, 아득한 기억 속으로 긴 여행을 떠나야겠다. 비 갠 시골집 마당은 고요하고, 마음속에선 여전히 우렁찬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들려오고, 수많은 하얀 모래알이 파도에 씻겨 보석처럼 빛나는 듯하다.
인기 추천정보
▶일상에세이 바로가기 ☞
▶생활의발견 바로가기 ☞
▶일상소식 바로가기 ☞
독유당 혼놀 이야기에서 더 알아보기
구독을 신청하면 최신 게시물을 이메일로 받아볼 수 있습니다.